Home HOBY졸업생 HOBY리더십 - 졸업생 체험담

HOBY리더십 - 졸업생 체험담

게시글 검색
[WLC] 마음 속의 별 다섯 개 - 민족사관고등학교 국제계열 2학년 유 정이
호비한국본부
2017-05-16 13:22:00

WLC, 마음 속의 별 다섯 개

민족사관고등학교 국제계열  2학년 유 정이

 

한손에는 여행용 큰 가방을 끌고, 다른 한손에는 HOBY 기념품을  들고 HOBY 티셔츠를 입고 HOBY 가방을 메고 집에 들어선 나에게 가족이 연이어 물었다. 워싱턴에서 WLC (World Leadership Congress) Ambassador로 보낸 지난 열흘이 어땠냐고. 대답은 OUTSTANDING! 그 한마디를 하고는 밤늦게 도착한 탓으로 짐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목욕 후 그대로 잠자리에 눕자, 지난 20여일의 갖가지 경험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인도  콜까타 빈민 학교에서의 10일간의 팀 대표로서의 국제자원봉사 후 연이은 HOBY에서의 10일간의 체험! 내가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한국 사회를 넘어선 “세계 속의 나”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 소중한 체험! 미래의 내가 세계사회와 세계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에 헌신하고 있다면 꼴까타의 자원봉사는 주춧돌로, HOBY의 경험은 굵은 기둥이 될 것이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나는 부모님께 ‘HOBY에 가길 정말 잘했어요.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라는 말을 드렸다. 지난 열흘간 보고, 듣고, 느낀 넓은 세계는 나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2006 World Leadership Congress에는 430여명에 달하는 15여 개국의 고등학생들이 모였다. WLC 첫날 나를 비롯한 25명의 한국대표단은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했던 탓에 George Washington 대학에 늦게 도착했다. 그 바람에 HOBY의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먼저 인사를 나눈 후에야 첫 대면을 하게 된 나는 조금 움츠러져있었다. 혹시나 미국아이들이 내 영어를 비웃으면 어쩌나,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날 무시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내가 그룹 방에 들어서자마자 날 환영하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날을 시작으로 우리 조는 모든 활동을 거의 항상 같이 하면서 서로의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서, 서로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 후 피부색과 눈동자 색만큼이나 다양한 나라와 문화에서 온 우리 조의 15명은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같이 한 모든 시간과 함께 느낀 모든 감정이 너무나도 다른 우리를 신기하리만큼 닮은 하나의 작은 그러나 오직 하나뿐인 세계로 묶은 것이었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그들이 섞여서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의 체험. WLC에서만 가능한 첫 번째.

 

오전동안 짐 정리를 하면서 이번에는 언니에게 이야기 꾸러미를 풀었다. ‘걔네는 사람을 대하는 게 우리랑 너무 달라’라고 시작한 미국아이들의 생활 속 문화, 그리고 세계 각국 아이들의 놀이 문화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언니 역시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중학생으로 1년을 보낸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신이 났다.

 

WLC 둘째 날, 아침을 먹으러 기숙사 식당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중인데 이라크 여자아이한테 미국 남자애가 다가오더니 자기는 New Jersey에서 온 Adam이라면서 악수를 청했다. 곧 이어 자기가 WLC에 오게 되서 얼마나 기쁜지를 10여분 동안 말하더니 대화의 끝을 포옹으로 마무리하고 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나에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우리 조의 미국 여자아이들이 친절하게(?) 말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하냐고, 친구로 지내는데 나이, 성별, 국가가 뭐 중요하냐고. 나이를 따져가며 존댓말을 하고, 많이 개방적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과의 접촉에는 소극적인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너무나도 낯선 장면이었다. 특히 현재 이라크 전쟁 후 갈등 상황에서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대립을 하고 있는 이라크 여자 애과 미국 남자 애의 접촉은 더 놀랍지 않은가? 그러나 미국 친구들의 조언에 마음을 열자 나 자신의 세계가 점점 더 넓어지는 신기한(?) 상태로 변화했다. 곧 나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남자아이와 인터넷 문화 얘기를 하고, 알지 못하는 10여명의 미국 애들 앞에서 한국전쟁 설명을 하고, 파라과이 아이들에게 아리랑을 불러 주고 있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그리고 특히 이성!)에게도 거침없이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적극성,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솔직함이 나의 일부가 된 것을 발견한 나였다.

 

또 한 번의 충격은 WLC의 하이라이트인 Banquet의 댄스시간이었다. 나는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다니는 행운 덕분에 학기 중에도 시험이 끝난 뒤나 크리스마스 등에 댄스파티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우리 한국 대표단은 고등학생으로서 그런 기회가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많이 어색해하고 탁자에 둘러앉아 음료수를 마시면서 다른 나라 아이들이 춤추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비롯한 몇몇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그래서 어설프게나마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열기가 뜨거운 댄스 플로어로 진입한 바로 그 때 나와 내 한국 친구들은 경악을 하고 다시 탁자로 돌아왔다. 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섹시한 자세로 같은 주에서 와서 친한 친구 사이라며 자신들을 소개했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밀착해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참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나한테 한 남자애가 오더니 춤을 추자고 했다. 소극적인 태도로 피곤하다고 거절을 하고는 파티가 끝나서 방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동안 생각을 했다. 난 왜 그렇게 이상하게 여겼을까? 그것은 단지 내가 지난 18년 동안 살아온 우리나라의 정서에 갇혀 있어서였다. 다음날 출발 전 난 춤을 추자고 했던 그 친구에게 가서 포옹을 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미국 남자 친구는 환하게 웃으면서 화가 난 줄로만 알았다고 다행이라면서 고맙단다! 국경과 문화, 종교를 넘고, 나이와 성별을 넘어버리는 우정. WLC에서만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오후에 학원을 다녀온 동생이 물었다. HOBY 캠프가 어땠냐고. 난 대답했다. ‘너도 꼭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봐.’ 지난 열흘간 절실하게 느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국제 공용어로써의 영어의 역할이다. 나름대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왔고 학교에서도 영어로 수업을 듣는 등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있었던 나는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하고는 내심 많이 놀랐다. 간단한 일상대화는 전혀 불편함 없이 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내 생각을 전하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면 단어나 표현을 찾느라 한참 진땀을 흘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한 생각은 ‘얘들이 속으로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라는 걱정과 열등감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룹시간에서 미국 친구가 진지하게 “우리 미국인은 반성해야만 해. 정이는 저렇게 적극적으로 영어를 익혔기 때문에 우리와 그리고 세계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우리 미국인은 다만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알아듣기를 바라기만 하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니?”라고 한 말을 듣고는 순간 그 친구의 말을 넘어선 무엇을 깨달았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 영어를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하다는 것, 영어는 수단이며 결코 목적이 아니라고, 그러나 영어를 자신 있게 말하고 고급 어휘 사용은 품위 있는 태도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내 특이한 악센트를 감추려하기는커녕 당당히 드러내면서 내 생각을 조리 있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태도로 영어를 사용했다. 그 결과 외국인 친구들과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되었다.

 

WLC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방법에는 언어로 통하는 것 말고 음악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WLC에서는 마지막 날의 banquet을 위해서 모든 참가자들이 합창 연습을 매일 한 시간 반 씩 연습을 한다. 초반에는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가사의 의미를 가르쳐주느라 연습 속도가 느리지만 곧 해결이 된다. 하지만 곧 음정이나 박자를 틀리는 아이들 때문에 음악적 감각이 있는(나 같은 *^^*) 아이들이 진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 역시 금세 조율이 된다. 그리고 결전의 합창 날. 아이들은 말과 글로 나누어서 이해했던 서로의 나라, 문화, 가치관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아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완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게 된다. 음악의 힘.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나는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WLC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나라에서 온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영어를 하지 못했다면, 합창 음악이 없었다면, 그리고 셀 수 없는 많은 다른 의사소통 방법과 열린 자세가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소중한 외국인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WLC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세 번째.

 

지난 이틀 간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을 아는 친구들이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잘 다녀왔냐고 어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우리,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라고 말한다. 나의 학교 친구들은 물론 내 친구들 대부분은 학업에 뛰어나고 나는 내 친구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친구들과 또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은 WLC에서 만난 세계에서 모인 주니어 리더들의 생각과 의식이, 그리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은 나를 자극할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누적된 피로에서 벗어나 한결 여유를 갖고 주위를 보게 되었던 WLC의 일정 중반부 즈음  문득 미국인들은 과연 세계를 배려하고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처음부터 나를 압도했던 미국중심적인 분위기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들었다. 95%가 넘는 강연 패널리스트들이 전부 미국 국적을 소유했단 사실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 그리고 단 한 번의 식사에도 외국 음식(예를 들면 한국음식이나 중국음식) 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소한 것에서까지 도대체 200여명의 international ambassador를 불러놓고 뭐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한 미국 친구와 이야기 하던 중 그 친구가 내 의문과 비판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왜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더 배려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더니 식사를 마치자마자 친구들에게, 조 리더에게, 섹션 리더에게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곧 그 불만이 총 책임자에게까지 전해졌고 그 다음날부터 쌀밥이 메뉴에 등장하고 많은 그룹이 여기저기에서 미국중심주의에 대해 토론을 했다. 그 날 이후로 더 많은 미국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와 한국에 대해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고등학생을 포함해서 미국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미국인은 너무도 많다!).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와 북한에 대한 오해를 어느 정도 풀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모국어가 영어인 덕에 말 하나만 잘하는 것처럼 보였던 미국친구들의 깨인 생각과 열린 마음 그리고 과감한 행동이 바로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지탱하는 자원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에피소드였다.

 

며칠 뒤 Smithsonican 박물관이 있는 mall에 가서 아동 기아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던 아동기아를 직접 설명하고 서명을 받아서 내 손으로 널리 알리고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였기에 잔뜩 들떠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날씨가 무더운 탓인지(섭씨 40도 정도!) 아동 기아에 대한 내 설명을 듣기 전부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짜증을 내는가하면, 심지어 돈이 필요한 거냐며 지갑을 꺼내서 얼마나 원하느냐고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난 단지 ‘매 5초마다 아이들이 기아와 관련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라는 사실을 말하는데, 단지 ‘하루에 19센트만 있으면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데, 아동기아를 이해한다는 서명을 그렇게 거부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망해서 물을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친구가 연속해서 거절을 당하면서도 계속 서명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더니 곧 한 페이지 가득 서명을 받아오는 것이 아닌가. 놀라워하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아직 미국은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다시 땡볕으로 나가 포기하지 않고 서명을 모았고, 결국에는 두 페이지 분량에 가까운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것, 쉽게 포기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무엇이든지 희망적으로 보는 눈WLC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국가를 짊어질 바람직한 미래 지도자의 모습! WLC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네 번째.

 

이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난 10일 동안 WLC에서 넌 무엇을 얻었느냐고. 그것은 바로 ‘훗날 한국의, 세계의 리더로 성장할 나 자신의 정체성 확립과 책임감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을 해왔고, 중학교 때는 학생부회장, 학생회장을 했으며, 고등학교 때에도 1학년 때 1학년 전체대표를 하고 각종 동아리의 장을 맡는 등 항상 리더의 자리에 있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이 크다. 내가 맡아서 추진하는 일은 모두 성공을 했었다. 정말 부끄럽지만 리더로서 성공했던 일이 다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나서라는 생각을 조금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WLC에서 리더십 강연을 들으면서 내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내가 리더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리더로 인정하고 믿고 따라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결국에는 내가 이렇게 WLC라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나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내가 어떤 유형의 리더인지도 알았다! 내가 팀워크 조성을 잘 하고, 일이 성공적으로 될 수 있게끔 카리스마를 가지고 모든 주어진 상황을 다각적으로 조정하고, 앞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뒤에서 조용히 온힘을 다해서 미는 리더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훗날 리더로써의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와 사회, 세계를 위해서 리더로써 내가 지닌 과제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것이 두렵다거나 버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난 나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 꼭 필요한 리더니까 말이다(^^). 이런 리더로서의 책임감, 리더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줌으로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해준 워싱턴에서의 10일! WLC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다섯 번째.

 

글을 마무리 하면서 WLC에서의 지난 열흘을 다시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나를 그려본다. 20년 후, 30년 후의 내가 지금 원하는 것처럼 국제경제정책을 다루는 지위에 있든, 아니면 한국사회의 어느 영역, 어느 위치에 있든, 미래의 나는 2006년 7월 말에서 8월 초에 워싱턴에서 내가 느끼고 받아들였던 다섯 개의 별들이 내 가슴에 들어왔고 계속 반짝임으로서 만들어질 것이다.     

 

* 시간 여유가 있다면 좀 더 생각을 하고 글을 썼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어제 저녁 늦게 연락받았을 때  모임이 있어 집 밖에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일정이 있어서 이제 겨우 마무리해서 보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