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OBY졸업생 HOBY리더십 - 졸업생 체험담

HOBY리더십 - 졸업생 체험담

게시글 검색
[WLC] 2008 WLC 보고서: 민족사관고등학교 6기 리더
관리자
2011-05-18 11:02:00
 7월 25일  3:30 PM.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했다.  이 순간부터 내 심장은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3년간 이곳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던 날도  7월 25일이었는데, 만 4년만에  이곳을 다시 오게되어 이  우연이 무슨 큰 의미인냥 더 기뻤다. 이제 호비의 많은  ambassador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더 뛰었다. International  Presentation과 International Panel에서 한국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더 좋을까?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 Smith Center에 도착했다. 순간 다시 걱정이 밀려왔다. 이 사람들 앞에서 과연 한국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을까? 

 

          도착한 날 오프닝 세션에서  참가국 소개가  있었다. 그 때마다 그 나라 ambassador들이 일어나서 호응을 했는데 “South Korea”가 불렸을 때 모두가  조별로 떨어져 앉아있었던 터라  다들  어색해하며  후다닥 앉아버렸다. 그 다음으로 “Taiwan”이 불려졌을 때  바로 도착한 대만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 나라 국기를 열렬히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대만 아이들의  대단한 애국심이 존경스럽다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순간 태극기를 가져 오지 않은 내 자신이 한심했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 25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똘똘 뭉쳐서만 다니면 social outcast로 취급받으리라  생각하고 자제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라서 몹시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그때부터   반드시 대만 아이들보다 커다란 환호성을 듣고야 말겠다는 고집스런 다짐을 하고  대만 애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날 Opening Ceremony에서 각 나라별로 국기를 들고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기를 가지고 나온 하은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고 관중석에선 우리나라 학생들의 목소리 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대만에서 온 아이가 “저는 대만에서 왔어요!”하면서 자랑스럽게 소리지르자 관중도 같이 환호성을 했는데, 이제는 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미국아이들까지 대만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Opening Ceremony후에 Leon Quan이라는  분의 말씀은 신선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대중앞에 연설할땐 저 정도의 인생 경험과 깊이를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재치와 유머로 포장해야 듣는 이의 마음과 귀에 쏙 파고 든단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웃기고 재밌었다. 리더를 꿈꾸지 않더라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꼭  익혀야 할 기술이 대화술이겠구나 싶을만큼 그 시간이 인상깊었다. 과연 이곳이 WLC구나! WLC에 온 것을 새삼 확인하게 해 준, 내가 여태껏 들어 본 연설중 최고의 연설이었다. 단어 하나 숨소리 하나 놓칠 수 없을만큼 배울게 많았던 스피커의 내용이었음에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의 한국 홍보 계획을 세우느라 머리 속에 끝까지 남았던 건 “Today everything changes.”뿐이었다.  

 

          호비 캠프 두 번째 날을 바로 International Presentation을 하는 날이었다. 우하하하 두고봐라. 오늘로 모든걸 뒤엎어주지. 이런 생각으로 오후 7시를 애타게 기다렸고,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그때까진 관객으로부터 엄청난 반응을 끌어낸 국가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행이었던 건 우리 다음으로 대만이었기 때문에  대만 아이들을 기죽이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준비실에서 대만아이들이 똘똘똘 뭉쳐서 엄청난 소리로 치어를 하고 있었다.   Today everything changes, YOU WATCH ME! 손에 땀이 줄줄났다. 아! 나 때문에 망쳐 버리면 어떡하지…  손에 들고 있던 쌍절곤을 고쳐 쥐자 긴장이 몰려왔다.  시작하기 전에 나연이가 몇몇 아이들과 함께 대~한민국 응원을 가르쳐주려고 다들 일어 나 달라고 부탁했을 때 모두들 일어나줬지만 몇몇은 좀 귀찮해 하는 표정이라서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세진이의 기합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나는 열심히 쌓아 올린 송판을 앞으로 들고 가고 남들이 6발자국 걸어갔을 때 8발자국을 나갔다. 천천히 올렸다가 내려놓고 인사를 한 다음에 모두 다 내 쪽을 향해서 격파 자세를 잡고 기합을 넣었다. 어쩌다보니 쌓아 올린 송판들을 내려놓은 곳이 대만아이들 앉은 곳 바로 앞이였다. 있는 힘껏 몸무게를 싣고 그 많은 송판들을 아작냈다. 송판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다 자리 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기쁘고 신이나 참을 수 없을만큼 큰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끝이 아니야! 조금 더 구경해보라고! 음악이 바로 시작하자마자 다시 한번 기선 제압을 할 수 있었다. 강렬한 인상을 주기위해 태권도팀 8명 모두가 음악에 맞춰 태권무를 보여줬다. 그리고 바로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쌍절곤을 보여준 다음에 격파 퍼레이드로 들어갔다. 이 과정을 거치기까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수백개의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고 박수와 환호성 그 자체였다. 쌍절곤 격파에서 조금의 실수도 없이 모두 다 개인 격파를 가볍게 마쳤다.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들까지 일어나서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서 “South Korea”라고 응원하여, 우리 모두는 그 순간 하나가 되었다.  공연 후 어떤 군사 학교를 준비하는 근육질의 아이는 나에게 찾아와서는 “You are my hero.”라고 했다. 또, 예쁘장한 미국 여자아이는, 내가 남은 송판을 머리로 깨뜨린걸 보곤  “That was so funny I thought I was going to pee in my pants!” 라고 했다. WLC DVD를 만드는 사람이, 국가소개중 가장 인상 깊은 나라가 한국이었다면서 우리팀에게 와서 너희들을 찍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제서야 ‘아 대만을 드디어 제대로 이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의 막이 내리고 한국에 대한 인상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걸  확연히 느꼈다. 그러나 그  흐뭇함은 대만의 역사를 알고 난 후 바로 사라졌다. 대만은 분명 한 국가로 존재하지만, 두개의 중국을 인정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에 따라 국제적으로 더 이상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 중국의 정통성을 빼앗 긴 것이다. 같은 조의 홍콩 애들은 그룹 시간에 “the Taiwan country”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대만은 나라가 아니란 주장을 계속 끊임없이  반복했다. 심지어 대만은 중국에 속한,26번째의 성일 뿐인데 왜 나라라고 주장하냐면서 다른 외국아이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중국어로 따지기도 하였다. 아무말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대만아이들을 보며 만약 우리가 아직도 일본에게 독립되지 못했다면? 한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고 세계인이 믿는다면?하는 가정을 하자 대만 친구들의 서러움과 아픔이 질투했던 만큼이나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고통과 비극을 안고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그러나  그 상황을 견뎌내야만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대만 친구들의 불안,불만,슬픔과 분노가 새롭게 다가왔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았던 미국 친구들이  새삼 성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국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이로써 WLC에서의 첫번째 변화가 찾아왔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  

 

          지금 나는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그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왜 여태까지  광복절을 그저 휴일로만 생각하고 왜 하루하루 나라가 있는것을, 그것도 온 세계가 인정해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더 감사하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반성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번째의 변화는 내 태도에 대한 반성이었다. 나는 다른 나라의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알고자 하는 열의와 성의도 없이, 열정만 가지고 이곳에 왔던 것이다.이곳은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를 배우자는 모임인데, 한국을 알린다는 미명하에 공연에만 집착했지, 정작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WLC의 중요한 취지에는 동의하지 못했던 것이다 . 리더로서의 책임감만 생각하느라, 열린 마음만이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진실을 놓쳤던 것이다. 이것 또한 호비가 내게 주는  큰 교훈이었다. 캠프의 네 번째 날에 U.S. Holocaust Museum에 갔다. 나는 4년 전 D.C에 살면서 Holocaust 박물관은 리포트때문에  세번이나 갔었기 때문에 이젠 또 뭘 보나  고민하고 있었다. 전시관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전에는 보지 못한 흑백 사진이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벽 전체를 채우고 있었던 그 사진은 세계 제 2차 전쟁이 끝난 다음 미군들이 찾아낸 사진 이였다. 유대인들의 시체가  나무 장작처럼 쌓아 올려지고 그대로 태워지는 잔인한 사진이었다. 모두 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직 살점이 남아있었고 ,죽어가며 괴로워했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였다.   팔과 다리가 비틀어져있는 채로 쌓여진 시체들… 인간이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무자비 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철학과 문화를 존중하는 독일이! 다수가  동의하는 행위라며 애써 침묵했을, 개인의 나약함과 비겁함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던  추악한 시간들이  여전히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WLC 참가자들은 500명 가까이가 되었고 박물관의 통로를 꽉꽉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진지하게 몰입하였다. 다른 관광객들의 우는 모습이 보였고 어떤 할아버지는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는 벽 앞에서 처절하게 흐느끼고 있었는 데 그냥 지나가기가 너무나도 죄송했다. 박물관 구경을 한 날 밤에 그룹타임에 모여서 아이들이 전부다 Holocaust 박물관에서 느낀 점들을 말했을 때 나는 한국역사에도 일본에 점령당했을 때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한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몰랐고 또 한편 일제 강제 점령의 역사를 말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한국도 유대인들처럼 국제 사회에서 성공하고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서 이런 박물관을 만든다면 우리의 역사를 알아 주게 될까? 그렇다면 그건  또 무슨 의미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 박물관에 와본다면 유대인들을 이해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또 그런 박물관을 만든다면 세계인들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생각할까? 역사는 돌고돌고,해답은 과연 어디에 있는걸까? 아직도 홀로코스트는 과거라 아니라 현재 진행형 아닌가? 민족의 이름이 바뀌고 압박하는 주체가 바뀌었을 뿐, 지금도 눈물흘리며 핍박 받는 세계인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세계 평화란 영원히 불가능할까?      

 

          6일째 되는 날에 장기자랑이 있었다. 정말 많은 학생들이 엄청난 재능을 가졌 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그저 춤과 노래가 아닌 패러디, 시 낭송, 발레, 살사 댄싱까지 다양하게 그리고 엄청난 실력들을 발휘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떤 흑인 여자아이가 부른 노래였다. 제목은 “I’m Proud to be an American”이였다.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가사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미국아이들은 전부 일어나서 어깨 동무를 하며 진지하게 음미하며 노래를 들었다. 이런 노래를 들으니 우리에게는 왜 한국인을 자랑스러워하는 노래가 없는지 모르겠다. 이참에 체육인의 삶을 접고, 음악인으로 도전해 볼까?  

 

          어느덧 WLC가 훌쩍 끝나버렸고 나는 섭섭하면서도 약간 허무했다. 모두다 WLC기간을 통해서 인생이 엄청나게 변한다고 했는데 난 아직까지는 두가지 만 바뀐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긴 이 두 가지가 얼마나 큰 발전인가? 이런 저런 생각에 정신없이 짐을 싸느라고 그만 태권도 준비물 쌍절곤들을 화물로 부치지 못했던 것이다. 뭐 별일 없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나는 짐을 조사받다가 무기를 가져왔다는 항목으로 비행기에 탑승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사정을 설명했으나 경찰관은 그래도 안 된다 면서 조사를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비행기 출발 40분 전!  마치 인생 최고의 위기에 빠진 듯 떨리고 무섭고 초조했다. 아! 이러다가 정말로 비행기 놓치면 어떡하나. 나만 혼자 두고 모두들 돌아가 버리려나? 근심 걱정에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아닌척하고 WLC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질문 하나 하나에 자신감 있게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나를 운동선수로 착각한 (항상 많은 오해를 받기는 하지만) 경찰관은 내게 일주일 뒤에 있을 베이징 올림픽에 가냐고 물었다. 나는 중국 YOC라는 캠프에 뽑혀 베이징 올림픽을 공짜로 2주간 참가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렇다고 대답하자 오 정말이냐고 놀라면서 나에게 싸인 해달라고 했다. 순간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경찰관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option들을 말해주었 다. 그 사실 하나에 나를 check-in 데스크까지 나가는 길을  에스코트해줬고, 상황이 술술 풀려나갔다. 후에 선수로 참가하는 게 아니라 유스올림픽 캠프에 간다고 말했지만, 그들에게 이미 나는  메달리스트인 듯 했다.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준 건 호비 정신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침착하게, 최선을 다하라!       

 

          고 2란 시기에 이런  빛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큰 기쁨과 자부심느낀다. 아쉬운 점이라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고야 말겠다는 강박적인 애국심 때문에  친구들을 맘껏 사귀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알리겠다는 외교관 같은 마음은 내 행동과 태도를 최선의 상태로 만들어 줬지만 ,세계 각지 에서 온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는 가지지 못하게 했 다. 내년에 도전하는 친구들은 텅 비운 마음으로 가서 가득 채워 오길 바란다. 애국심과 경쟁심은 두고 가고, 우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시간되길 빌어본다. 그래도 나 역시 많은  만남과 소중한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가  10cm는 자란 느낌이다. WLC는 끝났지만, 그 교훈은 이제부터 시작 될 것이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리라!    

호비만세,

대한민국만세,

우리 모두 만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