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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Y리더십 - 졸업생 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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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 after HOBY - 현대청운고 김현정
관리자
2011-05-18 10:55:00

Why so serious? ----------------------------------------------------------------------------------------------------

저는 지난 3일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라는 진부한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하긴 싫다. 특별하다. 즐겁다. 미칠 거 같다. 이 정도의 단어로는 그 것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음 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석종훈 패널께서 언급하신 언어의 한계일 수 있겠다. 짧았던 캠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꽤 긴 시간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작은 만남 하나하나서 부터 큼직큼직한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모습을 찬찬히 회상해보았다.  나의 가슴에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전율을 전해주었다. 그 떨림이 딱 그렇게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비, Hugh OBrian Youth Leadership. 이게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었던 것이었나.

HOBY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어느 신문에 실린 기사로 부터였을 것이다. 아님 유학관련 정보를 찾다가 토인비 홈페이지에 들어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기억에 나지 않지만 세계의 리더, 미래의 지도자 이런 단어로 설명되는 HOBY 프로그램이 되게 매력적이었다. HOBY에는 어떤 사람이 오고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궁금해 난 또 검색을 했고 HOBY 후기도 읽었고 그 사람들 블로그, 싸이에도 들어가 보았었다. 그랬음에도 기말고사 기간과 HOBY 신청기간이 겹쳐 신청서 작성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과 2007년 물리 올림피아드 준비한답시고 한참 바쁠 겨울방학에 HOBY라는 낯선 계획을 끼워넣고 싶지는 않다는 점을 들어 신청을 미리하지 않았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늦게나마 겨우겨우 낸 온라인 참가신청서는 인원수 초과로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또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다. 1년을 또 다른 참가자들의 사진들과 글을 읽으며 두근거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공부해야 했고, 2008년 HOBY 일주일 전에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으로 잠 못드는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HOBY is WHAT?
 
그렇기에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같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 그것은 내가 2년동안 Hobyian이 되고 싶어 갈망한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나는 HOBY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특히 고3이 되는 이 시점에 듣도보도 못한 리더쉽 세미나를 가겠다고 폭탄선언해버린 나를 기꺼이 HOBY에 보내준 가족들에게, 그리고 HOBY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학교 선생님들과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소개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잠깐 우리학교 얘기를 하자면, 이름은 현대청운고. 울산에 있고 2003년 일반계고등학교에서 자립형사립고등학교로 바뀌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우리학교에서는 국내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유학이라던가 봉사라던가 특별활동따위를 특별히 권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08년부터 국제반이 운영된다고 하긴한다. 어쨌든 이런 학교에서 나는 일종의 이단아였다(이것에 대한 구체적언급은 생략하겠다). 그래서 희귀하게도 전교생 450명 중에서 1명, 그것도 내일모레 고3인 인간이 HOBY 세미나간다고 하자,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반응은 당연히 시큰둥했다. 어 그게 뭐야? 거기 왜 가?

아쉽게도 그 땐 난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되게 좋은 프로그램인 것 같아서. 해보고 싶어서가 다였다. 나도 HOBY에 대해서 듣기만했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백문의 불여일견이라고 친구로 부터 후배로 부터 들은 얘기들은 그들의 경험이었지 나의 경험이 아니었다. 위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 약간의 기대와 편견을 가지고 1월 12일 1시, 나는 강남역에서 숙명여대 용인연수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물론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버스에 같이 앉을 사람도 없었다. 나는 혼자 기다리던 명지외고 다예에게 같이 타자고 말했고 용인까지 오면서 조, 학교, 장기자랑, 음악 등에 대한 얘기를 공유했다. 물론 그 이후엔 조와 방이 달라 마주칠 기회는 없었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건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About the HOBY programs
 
한국 호비 리더쉽 세미나는 크게 사람들과 만나서 친해지고 알아가는 조별시간과 HOBY cheers, penal seminar, leadership dynamics, 장기자랑/Dance party, reflection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난 CHEER할 때랑 사람들이랑 같이 춤출 때가 제일 재밌었고, 패널 세미나는 딱 한 번 졸았던 거 빼곤 다 열심히 들었을 만큼 정말 좋았다.사람마다 가장 인상깊었던 활동은 다 다르겠지만, 그 모든 순간들은 즐겁고 따뜻하고 재밌는 시간이었음은 틀림없다.
 
첫째날 용인연수원에 도착해서는 각자 방 찾아가지고 가방받고 짐 풀고 하면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대일외고 1학년 보경이었다. ""어, 13조세요?"" ""네"" ""저도 13조에요. 몇학년? "" "" 난 이제 고3."" ""아 전 고2되요."" "" 몇 호야?"" 그렇게 해서 짐풀고 보경이 방에서 또 다른 13조 여자애들을 만났다. 세원이. 그 때만 해도 우린 서로에 대해서 아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13조라는 거 하나만으로 말을 트면서 친해져갔다. 다시 강당으로 내려가니, 우리조 카운슬러 CK이와 정윤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더 만났다. 애들이 다 모이고 나서 우리 조에서는 돌아가면서 자기소개했는데 그 때 누가누가 있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HOBY CHEERS
 
HOBY President랑 코리아 토인비 이사님 인사가 있고 나서, 카운슬러들 소개들을 소개받았고, 간단한 인사 후에 dynamite!부터 DOWN! SHARK! I feel so good~! 등등등 몇 가지 HOBY cheers를 배웠다.  처음엔 ""어, 저 사람들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도 되었고 사람들 많은데서 허리를 돌리며 엉덩이로 tick tick tick tick 따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멜로디와 가사에 푸욱 빠져 정말 열정적으로 하게되었고 HOBY Cheers 금방 미친듯이 할 수 있었던 건 캠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은 정말 그리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진짜 실제로 요즈음 HOBY CHEER하고 미칠 것같은 욕구에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집에서도 단체로든 혼자서든 행동으로든 노래로든 문자로든 싸이에서든 CHEER를 계속 할 만큼 HOBY CHEER는 정말 중독성있다는 것! ㅠㅠ 호비 졸업생들은 HOBY CHEER의 맛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 (그렇지?) 이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누가 날 짜증나게 만들어도, HOBY CHEERS하면 다시막 엔돌핀이 솟아나서 기분 전환되고 기숙사에서 친구가 호비 부작용이다 뭐다 그래도 Cheer 혼자서 꿋꿋히 한다. (이런 태도 어때?)
 


The Future Of KOREA
 
그 다음 일정으로 첫 번째 패널 세미나가 있었다. "" 대한민국의 미래와 발전방향""에 대한 주제로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님께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다. 먼저 원의원님은 원의원님의 현재를 있게한 자기발전과 동기부여의 시발점이었던 어린시절을 언급하시면서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시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꿈과 의지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가난해서 핍박받는 삶으로부터의 탈출, 입신양명에의 의지 같은 것이었다. 좋은 환경에서도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는 나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다양한 주제 통합하여 이해하는 능력과 구조화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고, 시간관리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는데, 메모를 해놓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근데 약간 서론이 본론보다 약간 길어져서 아쉽긴 했었다. ""대한민국의 매래와 발전방향""에 대해서는 ""Dream factory"" 언급해 주셨다. 한 사람의 꿈을 디자인해주는 사람, 한 사람의 비젼을 제시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의 스토리, 비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미래의 사회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인데  약간 정치적이었고, 자신의 이론이 아닌 한 미래학자의 이론에 근거한 얘기어서 좀 진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젊은 정치인이자 좋은 아버지이기도 하신 분의 패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세미나였다.
 
그 분의 세미나가 끝나고 질문시간에, 한나라당이라는 보수당에서의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 정치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 드림팩토리라고 하는 사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그 외에도 경선 출마에 대한 내용 등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정말 쟁쟁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원의원님은 ""꿈이 사무치면 끝내 이루어진다""라는 명언을 남기시고는 우리와 같이 Cheer를 하셨다. 우린 연신 OUT-
STAND-ING을 외쳤다. 첫날이라 애들 상태도 완전 다 정상이고 Cheer 배운 직후라 패널 세미나 중에서도 진짜 제일 열심히 들은 거 같다.
 
첫째날 저녁 먹으러 갈 땐 13조라서 우리조 제일 늦게 먹었다. 밥 같이 먹고 조별소개 준비하면서 조장도 뽑고 조이름도 정하고 컨셉도 정하고 뭐 여러가지 했는데 우리가 좀 소극적이라서 카운슬러랑 조장이 리드한다고 힘들어보였다. 명덕외고 혜린이가 우리 조 조장으로 뽑혔고, 조이름은 카운슬러들 컨셉대로 '야 임마 뭐 임마'로 정해졌다. 조별 발표는 진짜 간단하게 퍼포먼스 구상해서 젤 먼저 해치웠는데, 우리 조 발표 이후에 I'll rock u 되게 많이 나왔다. 준비시간이 짧았었는데도 다들 개성있어서 재밌었다. 11조!꺼는 내가 힙합좋아하기 때문에 기억남고.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조는 "빵상!"
 
장기자랑은 이틀에 걸쳐서 진행되었는데, 모두 열심히 연습한 노력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Reflection with My group - # 13
 
난 원래 13이란 숫자를 좋아한다. 11113, 중학교 1학년 때 내 학번이었는데 그 때만큼 세상으로 부터의 신뢰를 가득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것말고는 특별한 계기가 없지만, 13이 좋다. 김찬휘 최정윤 김미승 김보경 김은민 김현정 민세원 원서현 이민수 이민휴 이예원 이은지 이주형 이혜린 정승민 최재원 최장혁. 우리 조였던 사람들 많이 얘기 나누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래서 더 그리워할 수 있는 거 같다.
 
Leadership Dynamics
 
크게 3가지 부스가 있었다. 모양 말로 설명해서 전달하고 맞추기, 신문에서 글자찾기, 종이탑쌓기, 연극 모두 조원들의 협동심을 요구하는 활동이었고 보통 중간정도의 크기의 그룹에서 ice-breaking 할 때 쓰이는 활동이라 해 본 적이 있었지만 요령이 잘 기억나지는 않았다. 특히 종이탑 있을 때 구상도 안하고 접기부터 시작해서 의견차이도 많았고 결국 제일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룹 내에서의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 그리고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와 장래의 진로선택! production, distribution, use!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오세정 학장님께서는 21C 지식기반사회와 장래의 진로선택에 관한 발표를 해주셨다. 지식기반사회가 무엇인지, 세계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속되면서 계속 생겨나는 변화의 주기, 그 영향력 등에 대한 얘기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해주셔서 이해가 잘 되었다. 새로운 산업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표준화, 기술, 자본과 노동력, 그리고 네트웍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20:80 즉, 파레토 법칙! 우리 HobYian들은 다 20% 안에 들 수 있을까. 아 21세기 리더의(?) 조건은 또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ㅠㅠ) 한 분야의 전문가여야 되면서 과학적 지식도 풍부해야 되고 탄탄한 기초과학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되면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너무 어렵다. 주무시는 분들은 많았지만 질문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나는 서울대학교의 비젼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었는데 아쉽게도 선택받지 못했다. 학장님 나가시면서 내가 있는 쪽 보고 '질문 다 못 받아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흑흑.
 

Unlimited Leadership - Summa sedes non capit duos!
 
드디어 세번째 날이자 마지막 날에 홍정욱 헤럴드 미디어 사장님의 세미나가 있었다. 앞으로의 세계화와 냉정한 무한경쟁사회로 운을 띄우시면서 이런 사회에서의 리더쉽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리더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 결정이 비록 위험한 것일지라도 실패할 각오를 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 된다고 하셨다. 그런 길을 가는 과정속에서 느끼는 고독은 리더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며, 검찰조사를 받았던 적 얘기를 해주셨다. 15세 유학을 시작으로 하버드 스탠 북경 뉴욕을 거쳐 한국으로 다시 회귀하실 때까지의 그 분의 삶의 기록은 이미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절절했다. 절제된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계속해서 언급하신 21세기의 리더의 모습은 자신의 고유의 가치, specialty를 가짐은 물론 감성적인 여성이 키워드였다. 일상에 안주하는 삶을 꿈꾸기에 너희는 아직 젊다며, 개척에서 정복으로 능력과 실력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리더쉽과 관련된 조언으로는 연민과 동정에 호소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감정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감정을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성만을 내세우는 융통성 없는 사람과는 다르다. 비젼을 제시하고 성과로 말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그 성과로 부터의 이익뿐만 아니라 Noveon: The box stops here처럼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네의 반장 회장 투표서 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한국은 발전해야 될 게 참 많은 나라다.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리더와 인재상에 대해서 여러가지 관점의 접근을 해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엘리트는 미디어커(mediocre)의 반대개념이다. 엘리트는 부유하고 똑똑해서 잘나가는 사람이 아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능력이나 지적인 능력에서의 특출함이 아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의 독특함이다. 엘리트는 앞으로의 사회에서 존중받을 것이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무엇을 어떻게 왜?'로 멋있게 정의되는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친구들이 손들고 질문을 하고 싶어했지만 질문을 많이 받아 주진 않으셨다. 정상이의 첫 번째 질문은 굉장히 좋았다. Risk의 리더쉽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그것은 리더의 필요조건은 아닌 것 같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것이었다. (맞나?) 또 기억에 남은 다른 질문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과 방법에 대한 질문이었다.
 
호비에는 진짜 간지질문男女가 많다. The life of Judical Official 강의하신 최강희 변호사님 때도 그렇고 다음 미디어 석종훈 이사님 The POWER of Imagination 때도 그랬다. 때론 나에게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 야속하기도 했지만 깊은 사고로 부터 유래한 멋진 질문은 아주 사랑스럽다. 그런데 질문하고 싶어서 일부러 겨우 만들어낸 질문은 정말 짜증난다. 패널세미나랑 관련성이 전혀 없는 질문들(유학유학)하는 건 싫었다. 마음같아서는 더 적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세미나 써머리는 따로 포스팅해야 겠다.
 
 
What on earth is Hoby spirit?
 
우리가 헤어질 때 카운슬러들이 제일 많이 언급한 term중 하나가 HOBY SPIRIT과 CYWORLD가 아니었나 싶다. 그럼 HOBY SPIRIT은 무엇인가. 우린 알고 있다, 호비가 무엇인지. 토인비는 Hugh O'brian(83)이라는 헐리웃 영화배우가  고(故)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에게 영감을 받아 1958년 설립한 민간재단이고 전 세계 청소년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해 각종 세미나 및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전 세계 35만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고, 한국에는 2003년 도입, 매년 1월 호비 한국 리더십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고. 그리고 여기서 인정받은 학생은 미국의 유수 대학에 입학할 때 유리한 것은 물론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는 HOBY의 졸업생이 되었고 HOBY cheers로 서로를 격려하며 자랑스러운 HOBY spirit을 가지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Burning desire가 뭔지는 알겠다. 그런데 HOBY spirit이란 건 무엇인가. HOBY 에 참여했다고만 해서 무조건 그 HOBY spirit이란 게 획득되는가. 누가 이 질문에 대해서 명쾌하게 대답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해본 HOBY spirit은 outstanding도 아니고 burning desire도 아닌거 같다. 그건 단지 HOBYian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일 뿐이다. HOBY spirit은, 새로운 것을 OUTSTANING한 자세로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HOBYian들이 가진 burning desire가 하나의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열린 마음. 열린 세계관. 낯선 사람에게도 HOBY라는 이름으로 다가가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말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는 것. 따뜻한 HOBY HUGS로 다른 사람을 반기고 또 감쌀 수 있는 포용력. 이런 것이 진정한 HOBY spirit이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좀 더 나의 속마음을 열어 내보이고 가식의 탈을 벗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와 편견이 아닌 사랑으로 대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가끔씩 이런 생각과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 부끄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My most KOREAN Factor
 
이번 에세이의 주제가 '너의 경험과 생각에 기반해 생각해 볼 때 스스로의 가장 한국적인 부분을 서술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나의 가장 한국적인 요소로 배타성을 들었다. 영어로는 잘 표현하지 못해서 arrogant attitude toward strangers라고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배타적인 것은 건방진 거랑은 다르다. 배타성이란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부반응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나는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린다. 소위말해 까칠하다. 한 사람을 만나도, 한 친구를 사귀어도,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온전히 다 알기 못할 때까지는 나의 속마음을 잘 들어내지 않는다. 그것은 좀 문제가 된다. 사실에 대한 것에서부터 나의 감정에 대한 것까지 진실되게 말해주질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난 올해 10월쯤에 그런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게는 배척한다. 한국에도 역사적으로든 전통적으로든 그런 배타성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크게 보면 혈연 지연 학연 하는 것도 다 배타성에서 기인된 것들이니까. 자신의 가족이 아닌 남을 배척하고, 자신의 고향 사람이 아닌 남을 배척하고, 자신의 학교 선후배 선생님이 아니라면 아무 손익관계도 없다는 듯이 배척하고.
 
그런 건 좋지 않다. HOBY spirit으로 이겨내자.ㅋㅋ
 
 
Before and after HOBY

난 애초부터 WLC 생각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08년에는 정말이지 평범하게 수능 공부만 매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행복한 기회가 될 수가 있겠지만, 난 그 기회를 억지로 잡아서 내 자신을 또 선택의 기로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그 기회를 잡기위해 노력할 시간적 여유와 마음이 없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HOBY 하고싶어 안달하던 그 욕심은 어디로 사라지셨나고? 그건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역량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2007년 한 해동안 나는 나의 능력 이상으로 너무 많은 일을 저질렀다. 과학학술동아리 봉사동아리 특별회의 운영위원회 활동, 별거없어 보이지만 정말 버거웠다. 그 쪽의 부족한 역량을 채우기위해서 나의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그만큼 배운 것도 많지만 또 다른 항아리에서는 학업이라는 물이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중에 왜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 정의되는가를 알 수 있었다. 난 그저 내가 부여받은 학업의 굴레안에서 편안할 그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장기자랑도 안했고 팀리더가 꼭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 나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좀 더 많은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지금도 지난 주말의 광란의 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름 얼굴 몰라도 한번 HOBY는 영원한 HOBY가족이라는 말을 기억한다. HOBY에서 만난 OUTSTANDING한 사람들 덕분에 순간 즐거웠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수 있었다. 우리보다 더더더 OUTSTANDING한 패널들의 세미나는 아주 유익했고 나의 정신을 고양시켰다. We are the Family. ~~~~~~~~~~~~~~~~~~~~~~~~
 
 
글을 마치며

나는 새벽에 커피한잔 마시고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서 오늘에야 드디어 썼다. 마지막 날 난 새벽에 울산에 떨어졌고 그 다음날 바로 학교에서 아침 8:40분부터 밤 10:00까지 수업이 있었다. 그 와중에 자습이라곤 2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며칠을 미루다가 오늘 이렇게 다 풀어내고 나니깐 기분이 좋다. 댄스파티 때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쉬는 바람에 우리 조랑 reflection 한 번 밖에 못하고 사람들이랑 많이 놀지도 못한 게 또 후회된다. 그런데 난 정말 몸 해치면서까지 밤새도록 놀지는 못하겠더라. (그래서 미안하고!!!) 우리 인연이라면 또 언제 어디선가 만나게 될테니 그닥 아쉽지는 않더라. 근데 우리 조 동생들한테 HUG 다는 못해줘서 아쉬웠고 HOBY HUGS 많이 그립다. 우리 leadership dynamics 할 때 몇 조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하튼 그 연극에서처럼, 전장에서든 어디서든 HOBY is WHAT? 하면 Dynamite!하고, Hey Sooa! Show me how to get down하면 D-O-W-N ~~하는,  동그랗게 둘러서서 Run a donkey(?)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이랑도 막 Side't Side't Side~~ 춤추고 WOOMBA WOOMBA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우리 호비fam. 영원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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