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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C] 벅차오르는 감동의 시간..
관리자
2011-05-18 09:51:00

제 1기 호비 졸업생, 대원외고 박혜진

 

2주간의 시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호비에서의 2주간의 시간이 내 15년이 조금 넘는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처음에 신청 할 때, 그리고 떠나기 전까지, 아니 호비에서 처음 몇일 간은 나도 확신이 안 섰었다. 내가 1기.. 아무도 보장할수 없는 HOBY WLC.. 어쩌면 돈만 날리는 건 아닐까.. 단순히 놀다만 오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지금은 내가 그 선택을 한걸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으로 여긴다.



호비에서의 처음 일주일은 LA의 CALPOLY대학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는 아시아 애들만 있기로 되있었는데 우리와 대만 애들 밖에 없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실망했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한 관계로 우리는 먼저 짐을 풀고 저녁을 같이 먹을려고 기다렸는데 대만애들이 늦게 먹는 관계로 우리는 별로 기분이 안좋았다. 역시 한국인들은 먹는거에 집착이 강한 것 같다. 하하! 처음에는 대만 애들이랑 친해질려고 대만 애들 방에 놀러가서 인사도 하고 그랬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친해지지는 않아서 섭섭했다. 사실 LA에서는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대만애들은 대만애들끼리 그렇게 끼리끼리 놀았다. 저녁에 하루를 마치면서 일기를 쓰면서 그것을 후회한 기억이 난다. 호비에 온 이유 중에 하나가 국제적인 친구를 만드는 것이였는데 너무 소홀히 한 것 같아서.. 대만 애들과는 사실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바로 사진 찍기였다! 왜 그게 갈등 요인이될까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우리에게는 엄청난 문제였다! 대만 애들이 약 15명정도 있었는데, 한번 단체 사진을 찍을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카메라를 모두 맞기는 것이였다! 우리는 이미 카메라 1-2개로 통일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안하는게 너무 짜증났다. 포즈 잡고 사진 20장을 찍는게 얼마나 힘든데... 한번 미운털이 박히니까 그때부터는 모든게 밉게 보이기 시작한 듯 싶다. 수영장 가자는데도 아무도 안가고, 약속시간도 안지키고, 토론하는데도 계속 태클걸고..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밉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문화적인 차이는 많이 걱정을 안했었다. 특히 대만애들과는.. 하지만 각기 다른 문화에서 자라서 서로를 이해하며 친구가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닳았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비록 1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였지만 떠날때쯤에는 너무 정이 들어서 마치 정말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같이 느껴졌다.

 


워싱턴으로 가는길.. 너무나 설레었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애들과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애들이 토론하는데 과연 잘 참여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이 내 머리 속을 헤엄쳤다. 워싱턴 디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호비에서 나온 사람들이였다. 너무나 호비틱했다! 너무 밝고 웃음을 항상 띄는 사람들이였다! 특히 한 사람은 입이 언제나 웃고 있어서 부자연스러울 정도 였다! 처음 도착해서 방에 짐만 풀고 히포드롬에라는데에 가서 애들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분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거 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무한테나 다가가서 ""안녕! 나는 어디에서 온 누구야! 반가워^-^"" 이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청하기도 하였다. 애들이 다 너무 착하고 밝아 보여서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방에 돌아가서 룸메이트들을 만났는데, 각각 캐나다, 라스 베가스, 메리랜드에서 온 애들이였다. 다들 너무 착하고 친절했다.

 


다들 보면 가장 즐거웠던 기억을 합창 연습이라고 하던데 나는 사실 별로 즐겁지는 않았다. 넘 피곤한 나머지 합창 시간에 졸지 않은 날이 없었기에;; 나는 노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그런지 단체로 모여서 게임을 할 때랑 댄스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하하 댄스 때 솔직히 많이 민망하긴 했지만 중앙으로만 안가면 그래도 참을 만은 했다! 하하// 한국에서는 솔직히 그렇게 단체로 재미있게 논다거나 댄스파티를 한다는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였는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너무나도 즐거웠다!내가 합창 연습때 졸았다고 해서 싫어했던 것은 아니였다! 나는 솔직히 합창연습때 가장 감동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 연습 때 지휘자 선생님 (숀)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글썽거리는 것을 본 순간 나의 가습은 감동으로 벅차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 노래는 우느라고 못 불르고 말았다. 나는 이때 내 평생 어떠한 선생님에게도 진심으로 하지 않았던 감사의 말을 숀에게 수없이 반복했다. ""Thank you, thank you so much Sean.. Thank you so much"" 이 말들을 숀을 꼭 안아주면서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것은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정말로 감동해서, 정말로 감사해서 말하는 감사였다. 방쿠엣 당일,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호비에서의 1주일간이 차근차근 떠올랐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 내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였는데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너무 슬펐다. 너무 헛되이 보낸 것 같아서 너무 후회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래 불렀다. 이번에도 마지막 노래에서 결국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이번에는 나 말고도 거의 내 주변의 모든애들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렇게 한 노래가, 사람을 감동시킬수 있다는 걸 난 처음 깨닳았다. 지금도 그때 불렀던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부르면 호비에서의 일주일간의 감동이 떠올라 감동하곤 한다.

 


호비에서는 각자 조로 나늬어 지는데 나는 G1이였다. 나는 솔직히 처음에는 1주일간의 시간동안 15명이나 되는 조원들과 얼마나 친해질까 의문이 갔었다. 그리고 가족같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나는 그말들이 모두 다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5년동안 살았던 영국을 떠났을 때나.. 3년동안 같이 학교를 다닌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이렇게 울지는 않았었다. 방쿠엣 전날, 방쿠엣 당일, 뿔뿔이 흩어지는 날.. 눈물이 다 말랐을 것 처럼 울었는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이제 곧 이 밝고 활기찬 애들과 헤어져서 다시는 이렇게 못 만나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7일간 이토록 정이 들었다는게 나 자신도 놀라웠다.

 


호비... 아직도 이 모든게 꿈만 같다. 상상도 못한 체험을 해본 나..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가서 너무 많은 걸 배우고, 깨닫고, 체험했다. 이렇게 OUTSTANDING한 체럼을 가능하게 해준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바꾸게 해준 호비의 350명의 친구들, 그리고 50명의 자원봉사분들.. 다들 너무나 감사드린다. 내가 이 은혜에 보답 할수 있는 방법은 1가지 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 그래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 나는 이렇게 믿고 있고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3 HOBY WLC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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